지방 도시는 시내라는 곳이 있다.  

광역도시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이라 부르더라. 

여하튼, 어릴 때 어머니는 쌀을 사러 시내 시장에 가곤 했다. 생각해 보면 버스를 타고 거기 가서 쌀을 어떻게 가지고 온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쌀집에서 배달을 해줬으리라 짐작할 뿐..

시내로 나가는 버스 번호가 몇 개 있었다.

버스 정류장은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동네 아줌마랑 쌀을 사러 시내 시장에 간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동네아주머니랑만 다녀오고 싶었던 것일까. 어른들 일이니깐?

나는 그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나도 데려가라고.

엄마의 팔을 잡고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가타부타 같이 못 간다는 설명 따윈 없다.

그때, 화장품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던 작은 지갑이 있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너도나도 그것을 갖고 있었다.

갈색과 붉은빛이 동시에 나는 파우치였고 화장품 로고가 밖에 새겨져 있다.

엄마는 그것을 지갑으로 썼다. 동전이 어른 두 주먹 정도 가득 들어있었다. 들어보면 무겁다고 느낄 정도였다.

집요하게 데리고 가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어머니는 놓으라고 팔을 뿌리쳤다. 놓치지 않으려 더 세게 잡았다. 그때, 엄마는 한 손에 쥐고 있던 그 동전 지갑으로 내 머리를 휘갈겼다.

순간 하얀빛이 반짝했다. 정말 너무너무 아팠다.

잡고 있던 엄마의 팔을 자연스럽게 놓았으며, 그때다 하고 어머니는 동네아줌마와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다. 

...

https://unsplash.com/photos/joqWSI9u_XM

과거 수정.

수십 년이 지나 나도 엄마가 되었다.

이제 나는 그 일을 수정? 할 수 있다. 아주 똑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내 아이도 떼를 썼다. 내 아이도 떼를 쓰며 울었다.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는 아래처럼 했다.

나는 가능하면 아이를 데리고 가려 노력한다. 문제는 내 아이는 가겠다고 떼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캐나다법으로 12세 전에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기에 데리고 가거나 누군가에 맡겼다. 아이를 두고 가기 시작한 것이 12세가 넘어서였는데 엄마랑 같이 있던 것이 지겨웠을? 아이는, 엄마가 나가는 일을 반긴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엄마, 잘 다녀와" 한다. ㅋㅋ

어쨌든 만약에 그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동전이 가득한 지갑을 휘둘러 머리를 때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렇게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접고 바닥에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등을 쓰다듬어준다.

"우리 모모. 가고 싶구나. 정말 가고 싶구나. 엄마가 미안해. "

그리곤 못 가는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그런데, 쌀을 사려면 여러 군데 데리고 다녀야 하고 시내는 사람이 많아. 그래서 너를 혹시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서 데리고 갈 수 없어. 이번엔 엄마만 아줌마랑 다녀오고. 나중에 쌀을 사러 가지 않을 때, 엄마가 널 잃어버릴 염려가 없을 때, 엄마가 시내에 데려가 줄 테니 우리 그때 같이 시내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까?"

라는 식으로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곤 내가 한 말을 반드시 지켜서,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 

어린 나에게 현재의 내가 위로를 한다.

 

 

"많이 아팠지?

괜찮아.

너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상처를 안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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